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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대학원 세부전공에 관한 예비 대학원생의 너무나도 주관적인 노가리

0. 올해 1월부터 연구실에서 인턴으로 지내오면서, 6월경에 확신을 가지게 되었다. '나는 audio signal processing, 혹은 적어도 이와 관련된 분야에서 활동할 사람이겠구나.' 그리고 9월로 예정된 사회복무요원 입영을 취소했다. 취소하지 않았다면 지금 즈음 머리를 빡빡 밀고 복지관에서 근무 중에 있겠지.

 

1. 필자는 전자음악에 한때 미쳐있었고, 지금도 큰 관심을 가지고 있다. (유의미한 결과물은 없었지만) 테크노나 하우스 작곡도 해보려고 아등바등했었고, 지역 내에서 디제잉을 하는 분들과 동호회 활동도 자주 진행하고 있다. 코로나 확산 이전까지는 간간히 어울리는 베뉴에서 노래를 틀고도 했고.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오디오가 컴퓨터를 통해 어떻게 처리되는지 관심을 갖게 되었고 그러면서 지금 다니는 이 연구실을 찾게 되었다. 

지금은 학업이 학업인지라 그때만큼 전자음악에 큰 관심은 없지만, 적어도 3년 동안은 이 분야에 깊게 몸담고 있었다. 그런 나에게는 '전기전자컴퓨터공학부' 내에서 오디오 처리 외 다른 분야를 찾을 동기도, 의지도 없었던 것 같다. (현시점 유망한 분야이기도 하고.) 

 

2. 곧 필자와 술 마시러 나갈 친구 한 명은 GIST대학 내에서는 자타공인 최고의 비디오 전문가 중 한 명이다. 관련 동아리 활동도 꽤 해왔고, 대학 내외 영상 편집 외주도 받고 있는 친구다. 그래서 그런가, 필자는 당연히 이 친구가 CV 혹은 영상 관련 분야로 연구실을 찾지 않을까 했는데 아니다 다를까 컴퓨터 그래픽 분야의 연구실을 찾았더라. 구체적으로 물어보진 않았지만 1. 과 마찬가지로, 나라도 그의 Boundary 외의 다른 분야를 깊게 찾아보진 않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쨌든 연구 분야에 대해 고민하는 후배들에게 나는 이런 케이스를 '명분이 있다'라고 표현하고, 가능하다면 학업의 명분이 있는 연구 분야 위주로 탐색해 보기를 추천하고 있다. 

 

3. 다만 명분이 있다고 해서, 혹은 명분이 없다고 해서 성패여부를 판가름할 수 있는 것은 절대 아니라고 본다. 예전에 한 저명한 공연기획자 분(아마 WDF 창립자이신 류재현 감독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의 페이스북 포스트에서 깨달음을 얻은 적이 있는데, 그 분이 말하길, 성공한 공연기획자는 공연을 사랑하는 기획자가 아니라고 했다. 공연, 예술을 사랑하는 것과 공연을 성공적으로 개최하는 것은 각각 무대 앞과 뒤에 관련된 것인 것만큼 굉장히 다른 것이라고 했고, 공연의 기획, 진행, 홍보, 행정적 절차 등 다양한 분야에서 많은 노력을 들여 노하우를 쌓음으로써 기획자가 성장할 수 있다고 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물론 공연을 사랑한다는 명분을 가진 기획자가 더 많은 노력을 들일 의지는 갖고 있겠지만, 명분 자체가 성공의 근거는 되지 못한다는 뜻이다. (기억의 왜곡이 있을 수 있다.) 하물며 세부전공에 대해 특정 명분이 있기 어려운 이공계인데, 대학원 진학에 있어서 좋아하는 분야를 찾으라고 강요할 수도 없다고 생각한다.

 

4. 사실 대부분의 '명분이 없어' 세부전공을 고민하던 선배, 친구들도, 그런 고민 따윈 잊어버린 지 오래인 체 잘 맞는 연구실에서 학업에 열중하고 있다. 이런 분들의 말씀을 들으면 대부분 적어도 2개, 많으면 4개의 연구실에서 인턴 활동을 해보면서 분야 선택의 폭을 좁혀갔다고 하더라. (과기원 학부의 특징이기는 하지만, 교수님이나 연구실에 대한 접근 기회가 많아 다양한 인턴 경험이 있는 학생들이 많다.) 괜히 대부분의 연구실에서 인턴을 받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교수님이나 고경력 연구자들께서도 예비 과학인들을 위해 해당 분야의 대한 연구 경험을 미리 제공하고, 그중 세부 전공에 만족하는 인력들을 확보하고 싶으신 것이겠지. 대학원 진학 생각이 있는 3학년이거나 여유가 있는 4학년이라면 일단 빨리 자대, 혹은 타대 연구실 인턴 경험을 해 보는 것을 강력히 추천한다. 해 보고 생각하자.

 

5. 연구실 박사과정 선배 중 한 분은 내게 매일같이 '내가 석사 혹은 박사로 졸업할 때 어떤 분야가 유망할 지 고민하고 있어야 한다.'라고 조언하신다. 어떤 분야이든지 내가 탑급이 된다면 밥벌이하는 것에 있어서는 전혀 상관이 없겠지만, 세상에는 천재가 너무 많기에 해당 분야의 향후 전망도 항상 유념해둬야 한다고 생각한다. 물론 석박도 아닌 하물며 학부생이 전망을 완벽히 예측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것은 사실이다. 또한 전망과 학문에 대한 열정 중 어떤 것을 더 큰 가치로 두는지는 개인마다 다르겠지. 하지만 연구실 입사 전뿐만 아니라 후에도 미래를 읽는 노력을 항상 겸할 필요는 있다고 본다. 

 

6. 연구분야 선택의 파라미터(매개변수... 이송합니다.)들이 주식 가격처럼 1차원적으로 움직이지도 않고, 각자마다 추구하는 가치도 달라 결국 세부전공을 정하는 것은 누가 정해줄 수는 없지 않나 싶다. 다만 어떤 파라미터들이 존재하고 있는지부터 알기 위해서는 다양한 경험이 필요함은 명백하다. 대학원 진학을 염두하고 있는데 명분으로 향하는 경험은 부족한 학부생이라면, 하루빨리 연구실 경험을 통해 세부 전공을 탐색하는 것을 (학사 졸업학기 재학생으로서) 추천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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